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원나라의 베트남 원정 (문단 편집) === 번외전투: 까오랑 전투 === 토곤과 안남국왕으로 임명 되었던 쩐 익탁의 주력군이 수도 탕롱 근처에 도달했을 때, 조금 먼 후방에서 다이 비엣 출신의 장군 레 탁(黎 唶), 레 안(黎 安) 등이 5천의 병사로 쩐 익탁의 아들 쩐 득(陳 德)을 호위하고 있었다.[* 쩐 득은 고작 9살의 나이에 아버지가 원나라 군대에 항복한 바람에 원나라 진영으로 끌려갔던 적이 있었다.] 뜻밖에도 레 탁의 군대는 탕롱 방향으로 이동 중에 노이방(內龐) 입새에서 매복하고 있던 따이족(齊族) 출신의 장군인 응우옌 테록(阮 世鹿)의 기습을 받게 되었다. 레 탁이 이끄는 병사들은 부상을 입었고, 응우옌 테록의 군대가 양쪽에 주둔하는 바람에 북쪽의 국경 일대로 이동할 수 밖에 없었다. 결국 레 탁과 레 안은 얼마 안 되는 병사만으로 룩남강(陸南江)을 끼고 달아나야만 했다. 응우예 테록은 곧바로 추격을 실시했고 레 안은 쩐 득을 안고 말을 탔으나 뜻밖에도 말의 체력이 너무 허약해 걸음이 느렸다. 결국 보다 못한 레 탁이 자신의 좋은 말을 쩐 득을 안고 있는 레 안에게 넘겨준 뒤 허약한 말을 자신이 타고 달렸다. 추격군에게 쫓겨 대다수의 병사들이 죽었고 결국 이들이 호위하던 쩐 득을 포함해 반 호닷(萬 戶達), 티엔 호티우(禪 戶小), 응우옌 린(阮 領), 레 옌(梨 燕) 등 약 60여명의 기병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고 1288년 설 즈음에 야밤을 틈타 겨우 떠민(思明)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